내 게임사전에 빚 따위!-10편  
작가명 : 앵거바델
등록시간 : 10-16 | 조회수 : 11
고딕
명조
연성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단, 어느 만화 속 대사가 있다.



떠엉!


<데미지 판정>
체력 : 24017/30000(-1116)
장비 내구도 : 44/100(-9)


‘미쳤어, 미쳤다고! 이걸 나더러 막으라고 쓴 거야?’


골드릭은 지금 그걸 절절히 깨닫는 중이었다.
겨우 5번을 정면으로 막았다. 그런데도 이 지경. 체력이 2할 가까이 깎였고, 장비는 절반 이상 내구도가 증발해 걸레짝이 되었다. 스텟 증가를 믿고 까분 결과가 이거다. 그는 기겁하여 눈앞의 상대를 흘겨봤다.


“그러게 왜 정면 승부를 하냐? 평소대로 흘리고 찔렀어야지.”
“네가 그렇게 무식할 줄 몰라서 그렇다, 왜?”


골드릭이 내뱉듯이 불평했다. 저 무시무시한 HP 수치, 증폭된 스텟으로도 따라잡지 못할 숫자가 무서웠다. 선택과 집중이 이렇게나 무시무시했다.


“스텟 총합은 이제 네가 나를 능가해. 그렇지만 내가 특화된 부분은 아직도 네가 밀려. 그걸 알고 늘어난 스텟을 활용해봐. 다시 간다!”


드라몬이 심호흡을 하고 창을 들었다. 황금빛 찬란한 창날이 보기 뜨거웠다. 태양을 꽂아서 가져온 것 같은 열기에, 골드릭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드라몬의 노림수가 거기에 있었다.


“빈틈!”


창이 그대로 땅바닥에 내리 꽂혔다. 시끄러운 폭음과 함께 땅거죽이 터져나갔다. 스플래쉬 데미지가 용서 없이 골드릭을 강타했다. 또 HP가 푹푹 깎여나갔다.


“아, 그래. 세다고 자랑한다 이거지?”


돌 조각 스친 뺨에서 핏물이 흘렀다. 골드릭은 그걸 쓱 닦아내고, 똑같이 다짜고짜 공격을 했다. 발을 구르자 수많은 덩굴이 드라몬과 드라몬의 말을 포박했다. 순식간에 장미꽃밭 하나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동시에 시야가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상태 변화>
신경독에 중독되었습니다
공격속도와 이동속도 75% 감소
지속시간 : 120초


‘그러는 지도 만만찮네.’


드라몬이 상태창을 확인하고 혀를 내둘렀다. 저번에 놀아줬을 때보다 효과나 지속시간이 몇 배로 늘었다. 어지간한 유저가 맞으면 그냥 멈춰버리겠군. 그녀는 고삐를 단단히 쥐고 말을 재촉했다.


“이랴!”


이히히힝!


말이 크게 울고서 몸을 흔들었다. 중장기병 클래스의 대 디버프 스킬 ‘광란’이다. 드라몬과 말이 금색으로 물들며 보랏빛을 떨쳐냈다. 저렇게도 주술이 깨지는구나. 골드릭은 잠깐 수를 멈추고 감탄했다. 20 레벨 마스터에 도달한 스킬인데…….


‘최상위 유저는 다 저런가 보네. 브릭스 때보다도 힘들겠는걸.’


그가 숨을 가다듬고 손바닥을 마주쳤다. 브릭스는 방심이라도 했지, 자신을 속속들이 아는 드라몬에겐 그것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땅에 손을 대자 팔뚝이 황토색으로 물들었다. 다시 집은 칼도 같은 색으로 물들었다.
대지 속성 강화.
이것으로 방어력과 내구도는 보강했다.


캉! 쨍그랑!


<상태 변화>
스킬 ‘대지 속성 강화’가 해제되었습니다


‘잠깐만, 이거 실화?’


딱 몇 초 동안만.


갑옷처럼 두른 황토색 빛이 깨졌다. 허무할 정도로 빠른 마무리였다. 한 번 부딪쳤잖아! 골드릭은 항의하는 눈빛으로 친구를 째려봤다. 드라몬은 별 것 아니라는 투로 창을 흔들었다.


“두 번째 교훈! 스킬을 너무 맹신하지 말 것. 맞받아치기보다 히트 앤 런을 즐겨서 몰랐지? 생각보다 스킬 해제 옵션은 흔해. 데미지가 낮아서 인챈트를 꺼릴 뿐이야. 데미지에 얽매이지 않는 몬스터라면, 더 말해봐야 입 아프고.”


그녀의 창은 여태 쓰던 것과 달랐다. 볼품 없고 짤막한 단창. 그러나 설명 칸에 아른거리는 ‘스킬 해제 효과 부여’가 뼈아프게 다가왔다. 골드릭이 새로운 사실에 난처해했다. 드라몬이 노린 바이기도 했다.


“되게 개 같은 옵션이네.”
“엄연한 현실이기도 하고. 최고레벨 콘텐츠에 참여했는데 주먹구구식으로 되겠어? 이제부터는 최상위 유저가 싸우는 법도 배워. 몸으로 익히게 만들어줄 테니까.”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드라몬은 말을 달려 골드릭에게 돌진했다. 창에 반짝이는 오색 빛, 스킬 해제 효과가 방어벽을 연달아 박살냈다. 골드릭은 별 수 없이 뛰었다.


“오늘 수업은 공격 100번을 받아낼 때까지. 못 받아낼 때마다 10번 추가야. 밤 내내 가상현실에서 있기는 싫을 거 아냐? 튀어도 되긴 되지만…….”


드라몬이 마지막 말을 일부러 흐렸다. 살살 꼬드기는 떡밥이었다. 골드릭이 보기 좋게 그 떡밥을 물었다. 누구더러 토끼라고?


“튀긴 누가 튄다고 그래. 얼른 와봐. 100번 전부 받아내 줄게.”
“바로 그런 태도야. 그럼 각오해!”


골드릭의 기세가 다시 올랐다. 늘어난 MP를 아낌없이 투자해 버프를 걸고, 쏜살같이 자리를 벗어났다. 빠른 달리기로 자욱한 먼지가 일었다. 드라몬도 드라몬대로 신이 나 창을 들었다. 먼지 속의 녹색 빛, 그리고 창에 가득한 금색 빛이 서로 번뜩였다.
숙영지 속 임시 연무장이 요란해졌다.












“좋은 아침!”
“좋은 아침은 개뿔이. 접속하니 다시 어깨랑 허리가 쑤시네.”


다음날.
점심을 먹고 접속한 드라몬과 골드릭이, 정반대의 표정으로 인사를 나눴다. 골드릭은 이를 갈아대며 친구 놈을 깠다. 눈앞에 중첩된 상태 이상 표시, 근육통과 피로가 반짝여댔다.


“기승 스킬도 적당히 올랐으니, 오늘 이동은 말을 태워줄게. 이 정도면 보상으로 충분하지?”
“되게 황송합니다요. 병 주고 약 주고도 아니고.”
“이제 겨우 시작인데 앓기는. 짧은 시간 내에 최상위 유저를 따라잡으려면 이렇게 해야 해. 진득이 앉아서 공부하고 육성할 시간이 없어.”


드라몬이 콧대를 높이고 육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스텟이나 스킬 레벨을 올리는 육성이 아니라, 이미 달성한 스텟과 스킬 레벨에 익숙해지는 육성이었다. 골드릭도 그 중요성을 알기에 불평만 했다. 진짜 불만이었음 진작 뒤집어 엎었으리라.


“알았으니 오늘은 쉴게. 당장은 급한 싸움도 없을 텐데 뭐. 출발할 즈음에 깨워줘.”


골드릭은 말을 마치고서 짐 더미에 엎어졌다. 일부러 코도 요란하게 골았다. 드라몬은 두꺼비 우는 것 같은 기괴한 소리에 실소했다.


‘똥스텟으로 키우기가 더 고생이었을 텐데… 역시 익숙지 않아서 그런가.’


그녀가 골드릭의 머리맡을 클릭했다. 기본적인 인적사항과 함께 현재 상태가 주르륵 나열되었다. 다시 봐도 기똥찬 성장이었다.


유저명 : 골드릭
레벨 : 주술사 60, 검사 37, 창병 23, 중장보병 15, 중장기병 13, 장인 12
체력 : 750(최대 HP 30000)
지력 : 1050(최대 MP 10500)
지구력 : 600(최대 스테미너 6000)
근력 : 600
민첩력 : 600


스킬 레벨은 잠겨서 보지 못했지만, 아마 비슷하게 뻥튀기되었을 터였다. 드라몬 자신은 각각 1000/300/300/1100/300. 총합은 밀려도 특화된 스텟은 여전히 앞섰다. 골드릭을 걱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당장은 몸을 사리느라 조심스럽게 행동하겠지. 그렇지만 강해진 스텟에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릴 거야. 그때아말로 위험해질 테고.’


방심을 풀지 못하게 한다.
그게 이번 수련의 목표였다.


“단장, 단장!”


자신도 잠깐 쉬려던 그때였다. 저편에서 꽁지머리 부대원 하나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싸울 때는 맹렬한데, 그 외에는 어리바리해서 유저 간 사기도 당하는 놈이다. 이번에는 뭐가 저리도 급하나 싶었다. 그녀가 쓱 비켰다가 뒷덜미를 잡아챘다.


“켁! 아파요. 아파!”
“아파야 정신 차리니 그렇지. 기습도 아닌데 무슨 호들갑이야? 주변 애들이 뭐라 하겠네.”
“기습은 아닌데, 기습 같은 일이에요.”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헛소리하는 모습은 또 처음일세.
드라몬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꽁지머리 부대원을 째려봤다. 부대원은 기합이 들어서 차렷 자세로 보고를 올렸다. 과연, 내용은 꽤 놀랄 만한 것이었다.


“아, 아르타헤나 측의 원정대가 도착했습니다. 우리랑 같은 진로로 왔더라고요.”
“아르타헤나?”


드라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르타헤나.
다섯 글자 이름이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레콩기스타 온라인의 강력한 길드들은, 제공되는 ‘기본 도시’가 아닌 유저가 만드는 ‘식민도시’에 똬리를 틀었다. 식민 도시의 이름이 곧 길드 이름이기도 하다. 기본 도시에 안주해서야 온실 속 화초들. 몬스터가 침공할 수 있는 위험지역이야말로 강자들에게 어울렸다.


“작년 길드 항쟁전 이후로는 오랜만이네, 피어리. 잘 지냈나?”
“그쪽이야말로 잘 있었나보군. 얼굴이 활짝 피었어. 컨셉 잡는 말투도 여유롭고.”


그 중에서도 최고를 꼽자면 둘이 있었다.
거주 유저가 제일 많은 탈렌시아.
몬스터 점령지와 가장 가까운 아르타헤나.


‘최전선에 있는 주제에 한 발 늦었군. 이번에는 뒤에서 힘을 기르겠단 거냐?’
‘덩치에 안 맞게 빨리 오다니. 역시 방심은 금물이야.’


하늘에 해가 둘일 수는 없는 법.
섀클턴과 피어리가 속으로 으르렁대듯, 그들은 언제나 앙숙이었다.


“단단히 준비하고 왔나 보구먼. 평소라면 우리보다 빨리 왔을 사람들이 늦다니.”
“그러는 탈렌시아 측은 몸이 달아올랐고. 너무 급하게 오다가 무리한 건 아닌지 몰라.”
“마음에도 없는 걱정이라도 고맙네.”
“난 진지한데 말이야. 아무튼 만나서 반갑군. 혼자 앞서가는 거면 어쩌나 싶었어.”


두 길드 마스터가 은근히 날을 세워 대화했다. 빈말로라도 친하기 어려운 사이였다. 섀클턴은 반 컨셉 반 진지로 예의범절을 중시하고, 피어리는 최고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물과 기름 같은 사이다.


“혼자 앞서면 더 좋지 않나? 보상을 독차지할 기회일세.”
“어이쿠, 우리끼리만 먹다가 입 찢어지라고? 이벤트 난이도를 알면서 그러네. 서로 즐겁게 가야지. 어차피 함께 고생할 텐데.”


‘가능하면 독점을, 안 된다면 우리 지분을 최대한 늘려야겠지.’
‘누가 네놈들에게 줄까 보냐.’


엄청나지만 제한된 보상도 갈등을 부채질했다.


“너도 왔네. 뭐, 아르타헤나쪽 랭커니 예상은 했다만.”
“네가 온 게 더욱 신기하지. 이벤트는 참여 안 한다면서?”


반면, 평소와 다르게 애매해진 사이도 있었다. 현실 친구인 골드릭과 하프너 말이다. 특히 하프너의 반응이 떨떠름했다.


“마냥 빌빌대기도 그렇더라고. 용기 내서 도전해봤어. 덕분에 업적 달성도 조금 했고.”
“그러냐. 축하한다.”


골드릭의 스텟을 확인하자 떨떠름함이 한층 짙어졌다. 골드릭은 별로 신경 안 썼지만 그는 달랐다. 맑았던 푸른 눈동자에 긴장감과 초조함이 살짝 깃들었다.


‘이러다 보상 뺏기는 건 아니겠지?’


게임 플레이어로서 지극히 당연한 욕심. 그것이 골드릭과 하프너 사이에 조그만 틈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