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게임사전에 빚 따위!-6편  
작가명 : 앵거바델
등록시간 : 10-08 | 조회수 : 19
고딕
명조
연성








저편에서 상대가 나왔다. 골드릭을 보고 가장 비웃던 간부였다. 드라몬이 그를 보자마자 콧등을 찡그리며 짜증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아! 역시 저놈을 내보내셨네.”
“많이 다툰 간부야?”
“다툰 정도가 아니야. 사사건건 부딪치는 놈이지. 브릭스, 중장보병 애들을 지휘하는 단장이야.”


‘오, 이런.’


골드릭이 할말을 잃었다. 중장보병이란 클래스명 하나로 설명이 되었다.
중장기병 직업과 중장보병 직업은 경쟁관계다.
같은 탱커 역할인 이상 경쟁은 필연이었다. 거기에 특성도 정반대. 중장기병은 능동적으로 움직여 어그로를 끌고, 중장보병은 굳건히 버텨 지키는 역할이다. 그래서 상대방을 깎아 내리고 자기 클래스가 더 좋은 탱커하며 다투곤 했다.


“개인적으로도 서로 마음에 안 들어 해. 우리 애들 얕잡아보려 해서 몇 번 다퉜거든. 멍청한 녀석, 서로 부딪치면 중장보병이 불리한 것도 모르고 덤비더라.”
“설마 자비 없이 깨부쉈냐. 아니라고 해주라.”
“어떻게 알았어? 아주 속옷까지 탈탈 털어줬지. 덤빈 놈을 봐줄 이유가 있나.”


이 콧대 높은 아가씨는 불에 기름까지 부어줬단다. 털어버렸단 소리를 듣고, 골드릭은 핏기가 싹 빠져나가 새하얘졌다. 그럼 자신에게라도 화풀이를 하잖아!


“…내가 저놈한테 필요 이상으로 털리면, 그건 전부 네 탓이라 칠게.”
“이기면 그만이야. 지려고 온 건 아니잖아. 안 그러냐?”


쉽게도 말하네.
승리를 확신하는 비결이 뭔지, 머리 뚜껑을 열어서라도 알아내고 싶었다. 가뜩이나 공격력 모자란 그였다. 중장보병은 단순 체력에서 클래스 제일. 골드릭의 공격력으로는 피똥을 쌀게 분명했다.


“가끔은 네 낙관론이 부럽네.”


스트레스 가득한 한마디를 남기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장비를 갖추고 자신을 노려보는 눈길이 살벌했다. PK였으면 진작 인수분해 당했을 기세다. 골드릭이 한숨과 함께 수련장에 발을 디뎠다.


“선수필승!”


자세를 갖추기도 전에 공격이 날아왔다. 힘차게 외치면서, 브릭스라 불린 중장보병이 방패를 앞세워 달려왔다. 골드릭은 기겁해서 칼을 들어 막았다. 맑고 고운 금속음이 수련장을 메웠다.


땅!


‘실력만 따진다는 게 이런 소리였어?’


규칙 없는 대련에 감탄사 아닌 감탄사가 나왔다. 이건 숫제 야생의 싸움이었다. 승리와 패배만 존재하는, 뭐든지 허용되는 배틀 로얄. 점잔을 빼거나 하면 순식간에 잡아 먹히리라.


“그대로 넘어뜨려주마!”


브릭스는 그대로 전진, 또 전진했다. 무거운 갑옷과 높은 근력 스텟이 골드릭을 밀어냈다. 한순간에 몸이 수련장 경계선까지 후퇴했다. 빗자루에 쓸리는 먼지 같았다. 이대로 장외패 당할 수는 없다.


“흠!”


골드릭이 기합을 주고 스킬을 사용했다. 주술사의 버프 스킬 ‘근력 강화’였다. 팔뚝을 시작으로 온몸의 핏줄이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밀리던 기세도 잠시 멈춰 섰다.


“하, 겨우 그 정도 버프로 되겠냐?”
“크윽.”


그러나 잠깐뿐이었다. 브릭스가 다시 힘을 주자, 도로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어중간하게 찍은 근력 강화로는 중장보병의 힘을 이기기 어려웠다. 결국 골드릭은 정면으로 맞서길 포기했다.


“어, 어?”


그가 몸을 숙여 빠져 나왔다. 그러느라 졸지에 브릭스의 다리 사이를 기게 되었다. 급소를 찌를 틈도 없이 빠져 나오는 골드릭. 브릭스는 수치심 따위 없는 움직임을 비웃었다.


“이왕 가랑이 아래로 갈 거면 칼을 휘둘렀어야지. 멍청한 놈.”
“차마 같은 남자로서 못할 짓이니까. 힘 되게 세네.”
“우리 길드를 대충 들어오려고 했냐? 그랬다간 큰 코 다쳐!”


브릭스가 다시 돌진했다. 이번에는 방패가 아니라 창이었다. 열심히 갈아둔 끝이 골드릭을 노리고 날아왔다. 골드릭은 멍청하게 맞부딪치는 대신, 땅에 손을 대고 주문을 외었다. 즉석에서 늪이 만들어져 돌격을 방해했다.


“어쭙잖은 방해 따위……!”


상대의 대응은 무작정 달리기. 강한 힘으로 물 섞인 진흙을 박차고 뛰었다. 무식하기도 해라. 곧바로 다음 주술이 준비되었다. 공기를 더럽히는 독안개였다.


‘정면은 내가 100% 진다. 몬스터를 잡던 대로 조금씩 깎아야 해. 실수하지 말자.’


독을 마시고 휘청거리는 브릭스. 그를 두고 골드릭이 작전을 짰다. 특별한 작전은 없었다. 한도 끝도 없이 치고 빠지기. 끈질김과 깡을 무기로 해야 했다. 똥스텟으로 그동안 살아남았듯이.


“지금 장난하자는 거야, 뭐야!”


독안개가 뚫렸다. 분노한 상대방이 창을 투척한 것이다. 푸른 빛줄기가 골드릭이 선 왼쪽 땅바닥을 헤집었다. 골드릭은 재빨리 창에 손을 댔다. 곧바로 브릭스가 창을 회수했지만, 잠깐 사이에 손잡이가 꺼끌꺼끌했다.


“남의 무기를 부수려고 작정했냐? 앙?”
“규칙 없는 싸움이라면서. 무기 손 대지 말란 법이 있던가.”
“다리몽둥이 부러지고도 태평하나 보자!”


부식된 창을 들고 높이 뛰는 브릭스. 피할 시간은 없었다. 골드릭은 한쪽 무릎을 꿇고 팔뚝으로 몸을 지켰다. 땅에서 올라온 힘이 그를 감싸 보호했다.


꽝!


브릭스가 유성처럼 하늘에서 내리 꽂혔다. 골드릭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팔을 타고 짜릿한 충격이 올라왔다. 몸을 감싼 방어막이 바로 걸레짝이 되었다. 브릭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창을 찔러왔다.
골드릭은 가까스로 머리를 틀어 피했다. 다시 한 번 창에 손을 대고, 브릭스에게도 주먹을 먹였다. 부식과 마비독이 무기와 몸을 침범해 들어갔다.


“도트 데미지도 별로 없네. 어지간히도 망캐인가 봐?”
“처음 키울 때, 쓸데없이 겉멋이 들어서 말이야.”


서로 숨을 고르려 물러섰다. 비아냥거리는 물음에, 골드릭이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괜히 옛날 생각이 나네.


“마법사가 없다고 해서 꿩 대신 닭으로 주술사를 했고, 여러 클래스를 배우면 다양한 상황에 좋다고 생각해서 이것저것 배웠지. 그래서 이 모양 꼴이고.”
“아주 제대로 망쳤네.”


짧고 굵은 모욕과 함께 싸움이 재개되었다.
브릭스의 돌격은 여전히 매서웠다. 골드릭에겐 피하면서 깔짝대는 것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조금씩 깎이더라도 결정타는 없게. 그는 다리가 아프게 뛰고 또 뛰었다.


‘쥐새끼 같은 놈. 힘도 없는 주제에 버티기만 하고 있어.’


브릭스가 조금씩 당황해 했다. 저건 주술사의 싸움법도, 검사의 싸움법도 아니었다. 스스로 소개했듯 마구잡이에 잡탕이다. 정석을 벗어나니 결정타를 먹이기 어려웠다. 그러면서 가랑비에 옷 젖듯 데미지가 누적되었다.


‘잔여 MP는… 거의 바닥인가.’
‘창의 내구도가 얼마 안 남았어. 빌어먹을! 저런 놈한테 질질 끌리면 안 되는데.’


고되게 싸워서 지치되, 상대도 똑같이 그러게 만든다. 골드릭이 아등바등 버텨온 비결이었다. 온갖 스킬과 부족한 스텟을 바닥까지 긁어 이용하는 것이다. 브릭스는 거기에 말려들고 있었다.


“이거 먹고, 그만 떨어져라!”


먼저 안달이 난 쪽은 브릭스였다. 강한데도, 아니, 강하기에 조급함이 빨리 일었다. 골드릭의 노림수도 거기에 있었다. 그는 일부러 힘을 빼고 상대가 접근하길 기다렸다. 그리고 창에 뚫리기 직전, 온 힘을 다해 아래로 피했다.


‘지금이다!’


그리고 남은 힘을 때려 박아 칼로 찌르고 독과 저주를 먹였다.


“아, 씁~ 더럽게 아프네.”
“콜록! 콜록! 이놈이 끝까지…….”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맹렬하게 회전하는 창은 어깨를 뚫고 깊숙한 곳까지 갈아버렸다. 폴리곤 조각이 사방으로 튀어댔다. 덜렁거리는 팔을 붙잡고 물러나는 골드릭.


쩌억.


그렇지만 피해는 브릭스도 컸다. 손잡이가 너덜너덜해진 창이 기어이 부러졌다. 갑옷 틈새로 찔린 부위도 독으로 푸르게 물들었다. 무시했던 도트 데미지는 어느새 한계까지. 아슬아슬하게 그가 먼저 무릎을 꿇었다. 독 섞인 피를 토했다.


“우웩! 웩!”
“독 저항력이 만만찮았을 텐데, 별일이군.”
“저주라든지 다른 스킬도 연달아 썼군요. 다른 저항력까지 쓰느라 MP소모가 컸나 봅니다. 자잘한 스킬을 저리 쓸 줄은 몰랐습니다.”
“너무 비효율적인데. 브릭스가 졌지만 이긴 놈도 만신창이야.”
“뭐 어때요? 이기면 그만이다. 입단 시험 규칙은 만족했으니 끝이죠.”


혀를 내두르는 다른 간부들에게, 드라몬이 웃으며 말했다. 그 말 그대로였다. 골드릭은 이겼다. 그것으로 시험은 끝이었다.


“어떻습니까? 마스터.”
“너무 거친 맛이지만, 승리는 승리지.”


섀클턴도 떨떠름한 표정으로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가 깃발을 들고 선언했다.


“승자, 골드릭!”


골드릭의 여정은 이제부터라고.












“다들 장비 똑바로 확인해! 놓친 놈 있으면 혼난다!”
“자기 물건 자기가 챙겨라. 포션도 최대한 빵빵하게 챙겨!”


골드릭이 입단하자마자 길드가 소란스러워졌다. 이벤트 참여를 위한 준비였다. 알고 보니 그가 막차를 탄 것이다. 조금만 늦었으면 말짱 황. 게임 플레이를 하고서 이만한 행운도 또 없었다.


“또 만나네. 만나기 싫었는데.”


그러나 행운의 주인공께선, 어째 표정이 개운하지 못했다.


“의뢰를 거절할 이유가 있었군요. 위대한 반격 이벤트에는 관심이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탑뱅커도 일행에 있었다.
사실 예고된 만남이었다. 그녀도 보급 의뢰로 참여한다 했었지. 골드릭은 기억력이 나쁜 스스로를 탓했다. 그가 최대한 탑뱅커의 시선을 외면했다.


“오해는 하지 마. 이거 때문에 거절하진 않았어.”
“탓하려고 꺼낸 말이 아니니 염려 마시길. 아무튼, 한동안 같이 일하게 되었네요.”
“보급부대는 얼씬도 안 할 거니 꿈 깨셔. 서로 얼굴 볼 일 없을 거야.”


골드릭이 잽싸게 선을 그었다. 확실히 말해두지 않으면, 어떻게든 틈을 파고들어 자기 일에 써먹을지도 몰랐다. 그런 냉혈한 상인이다. 탑뱅커가 아쉽다는 티를 냈지만 신경 껐다.


“그건 아깝네요. 약속 정확히 지키는 사람 구하기는, 현실에서든 게임에서든 쉽지 않은데.”
“빚 갚기로도 충분하잖아. 그 이상으로 부려먹을 거면 값을 내라고.”


쌀쌀맞기에는 쌀쌀맞게. 골드릭에게선 어떤 호의도 없었다. 그가 더 물어보지도 않고 자리를 떠버렸다. 보급부대를 호위하던 길드 일원이, 호기심을 품고 탑뱅커한테 다가왔다. 왠지 재미있는 볼거리를 본 것 같다.


“저 친구하고는 무슨 관계이십니까? 말만 들어보면 거의 원수 수준인데.”
“이래서는 가까워지고 싶어도 힘들겠네…….”
“어, 방금 뭐라고 하셨나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오신 김에 물건 확인을 부탁드립니다.”


잠깐의 넋두리를 흘리고, 탑뱅커는 다시 냉철한 모습을 되찾았다. 괜히 말을 걸어보려던 일원은 일만 떠맡고 가야 했다. 투덜대는 모습에서 원래 흑심을 알만 했다.


‘거의 반 년짜리 이벤트였던가.’


탑뱅커가 머릿속으로 일정을 정리했다. 이번 이벤트는 레콩기스타 온라인에 있어 뜻 깊었다. 동시접속자 10만 돌파 1000일과 오픈 5주년을 동시에 기념하는 경사니까. 게다가 업계에서의 탄탄한 위치까지 더해지니, 엄청난 보상도 납득이 갔다.


‘한동안 장사는 글렀군.’


가게를 좀 정리하고 올걸 그랬나보다. 잠금 장치는 잘 했으니 도둑맞을 일도 없겠다만, 혹시나 싶어 마음이 싱숭생숭했다.